▲ 단체행동과 총파업 등으로 대정부 의대 증원 반대 투쟁에 나설 조짐을 보였던 의료계가 정부의 초강경 대책에 한 걸음 물러선 듯 자세를 낮추고 있다. 인공지능(AI)이 파업하는 의사들의 모습을 그렸다. ©스카이데일리
정부가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하는 의료계의 집단행동 움직임에 ‘면허 정지’ 등 초강경 대응을 예고하자 의료계가 국면 돌파용 합법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주춤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 경찰이 ‘캡사이신 분사’ 등 강력한 제재를 모색한다는 보도까지 나오자 법적 책임과 처벌 리스크를 최대한 회피하자는 내부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총파업 등 집단행동은 일단 뒷전으로 밀려난 분위기다. 대신 의료계는 전면전을 피하면서도 총력전을 이어갈 셈법 마련에 분주하다.
1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12일 대전협 임시 대의원총회 끝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과 함께 집단행동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이처럼 결정을 유보함으로써 새 돌파구를 찾을 시간을 확보하며 내부 결속을 유지하겠다는 신중론으로 풀이된다. 대전협은 “전공의는 국가의 노예가 아니며 정부가 내놓은 필수 의료 정책과 의대 증원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하라”는 원론적인 입장은 표명한 상태다.
의대생·의전원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의대협)도 집단행동 방안을 논의한 끝에 구체적 방향을 내놓지 못했다. 일각에서 ‘동맹휴학’ 후 ‘인턴 지원 거부’ 등의 준법 투쟁 방식이 중점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동맹 휴학으로 전공의 80%가 집단 휴진을 했었던 2020년 문재인정부 당시보다 수위가 대폭 낮아진 것이다. 당시 단체행동의 한 방식이었던 ‘국시 거부’ 카드는 이번엔 이미 버린 패다. 지난달 의사국시가 끝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전공의들이 수련 재계약을 하지 않거나 3월 중에 대거 연차를 사용함으로써 법적 리스크 없는 ‘진료 거부’에 나서자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의대생들이 동맹휴학을 하고 지역 의사회가 모인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집단 진료 거부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결속력을 다지고 대정부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란 예측도 힘을 얻고 있다. 의대협은 선배 격인 대전협의 구체적 방침이 나오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면허취소’라는 초강수까지 내놨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3차 의료의 가장 밑단을 책임지는 전공의 공백 위기의 불씨를 선제적으로 진화하겠다는 얘기다. 지역 내 진료 기관 휴진 비율이 30% 이상이 되면 진료 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전공의 집단행동엔 업무개시명령을 내린다는 복안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집단 휴진이나 사직·연가 등 환자의 생명을 도구 삼는 행동은 하지 말아달라”며 “의사의 집단행동에 대한 정부의 엄중 대응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한 “학업과 수련에 힘써달라”며 의대협의 집단행동 움직임을 우회적으로 저지했다. 박 차관은 14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젊은 의사의 근무 여건을 반드시 개선하겠다”며 “전공의·의대생 여러분은 젊은 의사로서의 활력과 에너지를 학업과 수련·의료 발전에 쏟아달라”고 당부했다.
의료계가 술렁이는 가운데 전국 대학교수들이 강력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사회정의를바라는전국교수모임(정교모)’은 13일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의사 인력 확대 방안’에 문제점을 제기했다. 정교모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의대 졸업생’이 아니라 ‘실력 있는 의사’”라며 “그러나 입시학원 방식으로는 실력 있는 의사를 만들 수 없다. 의대·의전원의 교육 인력 상황과 교육시설 상황 등 현장 실정을 완전히 외면한 급격한 의사 증원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교모는 학원가에 N수생 문의가 쇄도하는 등 블랙홀처럼 이공계 우수 학생들을 빨아들이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한편 의협은 14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투쟁방안과 로드맵 등을 논의했다. 정교모와 같은 입장을 낸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현재 40개 의과대학 정원이 3000명인데 한꺼번에 2000명을 늘리면 의대 24개를 새로 만드는 것과 똑같다”며 “교육의 질도 떨어지고 대한민국의 모든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고 정부를 성토했다. 각 분과 위원회와 법률지원단·종합행정지원단 등으로 구성된 의협 투쟁위원회는 16일까지 비대위원 구성을 마무리하고 17일 1차 회의를 개최해 구체적인 투쟁 방향 등 주요 사항을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 면허정지 등 초강경 대응에 투쟁의지 급격히 꺾여
전공의 이어 의대생들도 집단행동 구체방안 도출 못해
의대교수모임 “교육현장 외면한 의대증원은 국민 기만”